수도권55산종주(완)

수도권55산 종주 8구간 안산- 인왕산-북악산

실을1 2016. 3. 21. 19:28


산행지: 서울 안산 , 인왕산,북악산

산행일시: 2016.03.20.일요일

누구랑: 길재님, 산사내님, 그리고  실을  나 3명이서



산행코스:  서대문역-25.안산(296m) -26.인왕산(340m)-창의문-27.북악산(342.4m)-숙정문-호경암-북악하늘전망대 -여래사-국민대(16.1km  약 7시간 20분)


2015년 작년 11월 7구간 종주를 마치고

이핑개 저핑개로 연기하다  겨울이라 추어서 못가고  못가고 .........    드디어 춘삼월 수도권 55산  종주를 다시금 시작한다

늘푸른 카페에다가도 계획을 올려 놓고

특별히 정회원님들 단체 카톡에 올려 홍보를 했지만 역시 아무도 가겠다는 회원들이  없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다  

  

맴버 7명중 4분들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못하고 3명이서 단촐하게 출발 한다

  부천에서 만난 산사내님과 1호선 타고  신길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여  8시경 서대문역에 만남을 가진다 

  광명에서 오시는  길재님도 반갑게 악수를 청하고

              

 서대문 1번 출구를 나와 들머리로 향한다  

큰 도로에서 우측으로 경기대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경기대를 끼고 돌아

서대문 마을버스 02 번 종점에 위치하고 잇는  뜨라채 아파트에 있는 들머리는 쉽게 찾을수 있다

안산 등산 안내도 따라 봉수대 까지 등로를 확인한다  


간단한 산행 준비를 하고  안산을 향해서 출발


아내와 걸어던  기억이 있는 독립문역  서대문형무소(서대문 독립공원) 에서 출발하는  안산 자락길과 마주친다

이블로그에서 안산 자락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요길 콕누르면 얻을 수 있다

http://blog.daum.net/ojyouk/8491809

양 옆은 개나리 나무가 즐비한데 이제 조금 지나면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게 될것 같은데  그때쯤이면 걷기에 좋은 길이 될 것 같다  

요즘은  날씨는 좋은데 미세먼지가 나뿜 수준이여서  먼 곳 전망은 기대할 수 없다

왼쪽이 안산 봉수대 오른쪽이  인왕산

우리가 가야할 인왕산 그리고   북악산

이럴땐 전망 사진으로 대체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안산 인왕산 북악산의 바위들은 대부분 화강석으로 검은 빛을 띠고 있다

왜 검은 빛을 띠고 있는지?  아는 분은 댓글 달아 주세용   




안산 자락길은 무장애길로 휠체어로 탐방이 가능하나

우리들은 이런길을 택하여 간다

사서 고생이지  







안산(296m)


무악이라고도 불리우며 두산이 마치 알안장과 같다고 해서 안산(鞍山)이라고 한다

안산(鞍山)의 '안(鞍)'은 말안장이란 뜻이다.

'鞍'이란 글자는 두 글자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가죽 혁(革)' 또는 '고칠 혁'과 '편안할 안(安)'이다.

도성 서쪽 산인 안산은 서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아야 편안하다고 해서 안산이라고 한다.

 말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글자 뜻을 찬찬히 살펴보면 역사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인조반정으로 혁명을 일으킨 서인 세력은 정권을 잡은 후 노론으로 이어져 조선 후기까지 정권을 놓치지 않았다.

반면 동인 세력들의 근거지인 낙산(駱山)은 어떤가? '낙(駱)'이란 글자는 낙타를 뜻한다.

'말 마(馬)'와 '각각 각(各)'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로 각각 말을 타고 간다는 의미다.

이는 곧 동인 세력의 분열을 뜻한다.

실제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렸으며 그 때문에 이들은 한때 정권을 쟁취하기도 하나 분열을 거듭하다 결국 탄압받는 정치 세력으로 남는다.

오늘날 보수 정권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기득권을 놓치지 않는 반면

진보는 잠시 정권을 잡았다가도 늘 분열을 반복하다 재야 세력으로 남는 지금의 정치 현실과 어찌 그리 똑같을까?


안산은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실을 때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이라고도 불렀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시대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 안산은 무악산(毋岳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악이라는 명칭은 한양 천도를 위해 지금의 청와대 뒤에 있는 북악산, 인왕산 등과 함께 도읍의 주산을 다투는 과정에서

 태조 이성계가 안산을 무악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학자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아이가 어머니의 등에 업힌 것 같은

 한성의 부아암(負兒岩: 북한산 인수봉)이 마치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듯한 형상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안산을 어미 산, 즉 모악(母岳)"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적고 있다.


정상 봉수대에서

길재님 산사내님 그리고 나

서대문형무소 부근

당겨보와도 미세먼지로 잘보이지 않는다



정상은 군부대 기지로 갈 수 없다

정상에서 우리는 잠시 자락길을 따라 하산한다

어라  이곳 서대문구는   구청과 의회가  따로 따로 있구나 ! 

우리는 서대문의회 쪽으로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파릇하고 꽃 몽오리가 맻혀지고 있다

데크 길이 참 편하다

이곳 전망대 벤치에서 잠시 쉬어본다  



자락길은 순환길이므로  길따라 걷다가  서대문의회쪽으로 내려온다 

의회 반대편엔 한성과학고

난 이곳 돔 천장이  마치 국회의사당과 같아 구의회인줄 알았는데 아님    

큰 도로로 나와 길을 건너  i-파크 옆길을 따라 가면  인왕사가는길 표지가 나온다 

한번 와본 길이라 눈에 익는다


인왕산 구간으로 진입한다

인왕사 표지를 잠시 살펴본다

인왕사 주변에도 몇몇 다른 절들이 보인다

비탈 골목길을 미로와 같이 올라 간다

 일반 집의 대문과 흡사한 대웅전    ㅋㅋ


인왕사 (펴온글)

인왕사(仁旺寺)는 서울시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전통사찰이다. 

 서울 중심에서 가장 가깝고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산. 그 중턱에 수많은 기자신앙과 토속신앙의 상징이 어우러진 선바위와 호국도량 인왕사가 있다.

풍수상으로 조산인 북한산에서 주산인 북안산에 연결되고 낙산이 좌청룡이며,

인왕산이 우백호가 되는 산. 동쪽 기슭은 아늑하고 풍치가 빼어나 장안 제일의 명승지가 되며,

북쪽은 무계동(武溪洞)이라 불리워 중국의 무릉도원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

인왕산 호랑이하면 서울 시민 중 모르는 이들이 없으며,

 서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 하면 모르는 이 없는 산이다.

 조선 초기 태조가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으로 창건한 인왕사는 많은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서울 사대문 안에 자리한 도량이었다. 

 인왕사는 선바위ㆍ국사당으로 불리는 무불습합의 신앙지와 함께 특이한 가람을 구성하고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국사당 즉 굿당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엔 남산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때 남산에 일본 신사를 지을려고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선바위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 형상이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禪(선)’자를 따서 선바위[禪巖]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 또는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도 있다.

이것은 인간이 죽어서 석불(石佛)이 되었다는 인간의 화신으로 설화되고 있으며,

 여기에 빌면 소원성취할 수 있다고 하여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자식 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정성을 드리는데,

 작은 돌을 붙이면 효험이 더욱 크다고 하여 작은 돌을 문질러서 붙인 자국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를 ‘붙임’이라 하며, 이러한 바위를 ‘붙임바위’라고도 한다.

일제가 남산 꼭대기에 있던 국사당(國師堂)을 선바위 곁으로 옮기게 한 뒤로 더욱 선바위에 대한 신앙은 무속신앙과 밀착되게 되었다.

 국사당은 무신당으로서 굿을 행하는 곳이니 바로 옆에 있는 선바위와 복합적으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선바위는 전국적으로 보이는 암석숭배의 일종이었겠으나 이것이 전설화되고 무속신앙과 밀착되면서 무속신앙의 주요지가 된 듯하다.



저멀리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두 사람들은  신선 노름하고 잇는 듯  


선바위의 뒷모습은  도포입은 스님의 형상이다

선바위에서 바로 직진은 도성으로 불가하고  한양 도성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 가야 한다 


한양 도성 인왕산 구간이다

이 구간은 서울 성곽길 일주할때 와 본 길이라 낫설지 않다  

두께비 닯은 바위?

계단길을 걸어 가니  허벅지가 도와주지 않는다 헉헉 거리며 ......................   

한양도성에서본 서울 시가지는 쁘였게 보인다






겨울 내내 등산을 게을리한 덕분에

비탈길 계단길을 오를때면 다리다 잘 떨어지지 않네

거의 3달 정도 둘레길만 다니다 보니  종아리, 허벅지 근육이 풀린것 같다 

자꾸 일행과 뒤처진다    



인왕산

높이 338m. 산 전체에 화강암으로 된 암반이 노출되어 있으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어 조선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왔다.

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중이 장삼을 입은 듯한 선바위(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는 예로부터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여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무신당인 국사당을 선바위 옆으로 옮긴 뒤부터 무속신앙과 더욱 밀착되었으며,

주위에 많은 무신당이 생겨 지금도 굿이 성행하고 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서울의 성곽이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는 자하문·명륜동·동대문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사직동·홍제동까지 이어진다.

군사적인 이유로 한때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사직공원·청원 아파트·무악재길 등에서 출발하여 성곽을 따라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가 개방되어 있다.

인왕산에는 태조, 무학대사의 기도터와 사직터널에서 자하문까지 서울 외곽을 쌓았던 성곽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산 이름마저 왕(王)자를 쓰지 못하고‘인왕(仁旺)’으로 고쳤다가,

1995년에 와서야‘인왕(仁王)’이란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 정상에 오르면 경복궁을 중심으로 인왕산과 함께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내사산인 낙산, 남산, 백악산이 펼쳐진다.

 정상 아래편에 겸재의‘인왕제색도’에 나오는 매바위와 치마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정상석이 없는 이곳

 가장 높은 바위위에서




인왕산 기차바위


운동주 언덕으로 내려온다







윤동주 문학관에 들어가 잠시  윤동주 인물을 탐구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음울하고 가혹한 시대 상황 속에서 반드시 여명은 오리라 믿고 써내려간 주옥같은 시어들은 오늘날까지 해맑은 영혼의 징표로 남아 있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윤동주를 ‘일제 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생전에 그는 유명 시인도 아니었고 독립투쟁의 목소리를 높이던 열혈청년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100여 편의 시는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청게천 발원지

창의문

창의문에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표찰을 받아  북악산 구간  산행을 게속한다  

계속되는  오르막 구간이다

감시 카메라와  곳곳에서 있는 청와대ㅐ 경비대대 소속 군인 들이 지키고 있어

사진 촬영을 해도 왠지 마음이 불안 하다  

자북 정도라고 써 있는데

이건 무슨 뜻일까?

자북정도(紫北正道)라ㅡ

자하문 북편산 정의로운 길이라는 글 뜻인데

正道은 곧 <국가안보>라는 뜻으로 풀이  한단다

북한산이  조금 보인다

산행중 좌측은  사진 찰영이 가능하나 우측(청와대쪽)은 사진 퐐영이 금지 되어 있다

애고 애고  또 힘들어지내




드디어 북악산 가장 높은 곳에 도착한다


북악산(백악산)


북안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한다.

산경의 흐름을 보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의 끝자락인 북한산 보현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형제봉을 거쳐 북악터널 위의 보토현(補土峴)으로 이어진다.

 이어 표고 328m의 봉우리와 팔각정 휴게소 앞 능선을 따라 북악 뒤편에 구준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울의 부주산(副主山)인 응봉(鷹峰)으로 이어져 경복궁의 배산인 북악에 다다른다.

북악산에서 청계천이 발원하는데, 2005년 11월종로구청에서 조사한 청계천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자하문 고개에 있는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이다.

서울 성곽은 북악산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1395년(태조 4)에 궁궐이 낙성된 뒤 같은 해 1월 기공식과 함께 착공되었다.

정도전(鄭道傳)은 성저(城底)를 측정(5만 9500자)하고 이를 97구로 나누어 각 1구를 약 600자로 하였으며,

 각 구마다 천자문(千字文)의 글자로 번호를 붙였다.

다시 말하면 북악산의 정상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일주하면서 천(天)ㆍ지(地)ㆍ현(玄)ㆍ황(黃)·……의 순서로 글자를 붙여나가다가

 95번째 글자인 조(弔)자에 이르러 북악산에 도달하도록 하였다.

현재도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북악산 기슭은 왕궁 및 관청과 가깝고, 또 경치가 좋았던 관계로 왕족과 사대부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별서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문인과 화가들은 이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림과 시문으로 남겼다.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는 촛대바위가 있는데,

일제 때 이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었고,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 정하였다.

현재는 쇠말뚝을 제거한 부분이 콘크리트 기중으로 마감되어 있다.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鞍部 :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는 서울 4소문(四小門)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 : 일명 자하문)이 남아 있다.

 창의문에서 정릉의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는 창의문, 팔각정, 풀장 등을 연결하는 관광도로로

 울창한 숲과 서울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좋은 경승지이다.

북악산의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공원(三淸公園)이 있고, 동쪽에는 숙정문(肅靖門)이 있다.

숙정문은 조선의 도성 4대문 가운데 정북에 위치한 문이며 속칭 북문(北門)이다.

 이 문은 태조 5(1396)년백악산의 동쪽 고갯마루에 세웠는데, 도성 북쪽 방향을 출입할 때 이용하였다.

1968년 1ㆍ21사태 이후 북악산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것이,

서울성곽 백악산(북악산) 일원 전면개방계획에 따라 일차적으로 2006년 4월 1일숙정문과 함께 삼청터널 북쪽 홍련사(紅蓮寺)에서

 도성(서울 성곽)을 따라 촛대바위까지 약 1.1㎞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북악 가장 높은 바위 위에서

121사태 소나무



조금 낮은 곳에 청운대


화각이 못미치나  전경사진대로 찍어보니  

숙정문 에 도착 한다

숙정문을 통과 하여

숙정문지킴이에서 표찰을 반납하고 북악 하늘길로 향한다

우리는 붉은 선으로 표시된 김신조 루트를 따라 간다  이 길도 가본 길이다


옛날 요정 정치의 상징인  삼청각  


가재가 물장구치고 노는 뜻의 수고해 다리  이름이 앙증 스럽다


수고해 다리는 성북천의 발원지란다


점심을 먹기위해 잠시 쉰다

반찬들이 좀 시원찬네 ㅋㅋㅋㅋㅋㅋㅋ


서마루


남마루

남마루에서 본 삼청각


능선길인 북악 하늘길을 따라 편안하게 걷는다


호경암




 표지석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책이 처있는데  우리들은  그곳을 넘어 가보니  군부대에서 만든 표지석이다

좀 어두워  역광보정을 해본다   그러니 좀 나아진다 

하늘 전망대에 도착한다




북한산 보현봉이 가장 뚜럿하게 보인다



하늘 전망대에서 국민대,  여래사로 향한다

이곳은 처음가보는길

호국 사찰인 여래사

국산 현대차 인데  상부가 거의 오픈카 수준이다  무슨차 인가?










배를 만지면 아들난다고 그랬던니 길재님이 냉큼가선 만진다

만지는 이유는?



다음 9구간의 들머리인 형제봉이다

눈여겨 본다

북악터널

국민대 앞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이렇게 해서 55개산 중 27개산을 크리어 했다


버스를 타고 길음역에 도착하여

오랫만에 셋 이서 뒷풀이를 한다  낙지 곱창 전골인데  가운데 양파 속의 계란이 이채롭다   

 부천역에 내려 집으로 가는길  어두워진  시장 골목을 거닐면서

하루 산행도 정리하고 또 한주를 기약해 본다  

갑자기 떡이 먹고 싶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재님이 수고하신 내시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