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종주기(완)

한남정맥9차(아차지고개-할미산성-석성산-부아산-하고개) 종주 산행

실을1 2014. 9. 1. 19:47

 

산행지: 용인 석성산(471m), 부아산(402m)

산행일시: 2014.08.31. 일요일

누구랑: 부천 늘푸른 산악회 정맥 종주팀 나들이님, 꺼먹산님, 기자님,실을  4명

 

 

 

 

산경도상  우리가 걸어온길

산행코스: 아차지 고개 - 4.3km -안현 - 1.2km -마성ic- 1.3km -석성산- 3.9km -42번도로(삼가역) -3.2km -부아산 - 12km -하고개 (15.1km )

9차 정맥 산행이다 8차때 많은 인원이 참석하게 되어서 내심 기대를 했는데 

출발일 몇칠전 대원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반응이 시원찬던데

아니나 다를까? 남2 여2영으로  단촐한 등반대를 구성하게 되었다  

특이나 나와 첫 1구간부터 쭉 같이 정맥산행을 해온 가고파님이 무릎이 시원찮아

약 한달간 요양을 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낙심 천만 하다

나들이님 쾌차를 빌면서  우리 정예부대인 4명이니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 

부천 소사역에서 7시 출발하여 내 애마를 타고 40여분 달려 가니 산행 들머리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는데 주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산행 들머리 아차지 고개의 푸전 포차 음식점 앞에서  산행 준비를 한다

오늘 들머리는 도시를 통과하기 때문에 조금은 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하고 출발해본다  

산행 지도에 표시된 어정 가구단지 와 주유소를 보고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그런데  산으로 올라가는 들머리를 찾지못하고 새로난 도로를 따라 줄곳 진행하다보니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틀린줄 알면서로 이왕지시 도로 따라 가다가 향린동산을 찬도록하지고 무작정 걸어본다

향린동산 동백중학교 폿말에서 좌회전한다

위성지도에서와 같이 원래 파란색으로 진행 하려는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되고

또한 향린동산으로 가려고 하니 도로에 바리케이트가 쳐 있고 수위는 갈수 없다고 손사례를 친다

그리고는 우측으로 돌아 가란다

할 수 없이 우측으로 돌아 가보니 에버랜드 가는 큰도로가 나오고  .... 잠시 우왕좌왕 하다 벌초하려고 오신 한분 께 알아보니

이곳에 사시는 분으로 할미산성으로 가려 한다니 진입구를 알려주어 다행히 등로를 찾을 수 있게된다  

  결과 적으로 붉은색코스로 진행하게 되었다  

향린동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위엔 영동고속도로와 국도 

향린동산 쪽으로 가다 저지 당해 약간 우측으로 진행하다보면  산으로 올라가는 좋은 산길이 나온다  

우리는 동백 중학교에서 올라 왔으니 할미산성 가는 길을 찾는다

길도 찾았으니 잠시 쉬어 대열을 정비 한다  아무튼  우리는 들머리에 무지하게 약하다  ㅋㅋㅋㅋㅋㅋㅋ

우리도 우리 늘푸른 산악회 비표도 붙여본다

 

향린동산 쪽에서 오는길의 정맥표시

고운 능선을 따라 가니 얼마 않되어 할미산성에 도착한다

 

 

할미산성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할미산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할미산성은 성 내부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길이 180m의 공유 벽을 기준으로 북쪽의 내성, 남쪽의 외성으로 구분된다
.
북쪽의 내성은 정상부를 포함한 높은 지대에 축조되었고, 남쪽의 외성은 비교적 낮은 지대에 조성되었는데
,
형태상 사모형(紗帽形)이다.성벽의 전체 둘레는 651m, 할미산의 정상부와 그 남쪽의 능선을 둘러싸며 협축하였고
,
내·외벽 기저부에서 보축이 확인되었다. 최정상부에서 매납 유구와 아궁이, 평지에서 적심석이 나왔으며
,
수구지와 토광 등이 조사되었다.

할미산성은 조선 후기에 간행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폐성(廢城)된 고모성(姑母城)’이라 기록되었다. 이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고려시대 한 노파가 하룻밤에 쌓았다”라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어 오랫동안 고려시대의 성곽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다 1999년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통해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을 대량 발굴했다는 보고를 하면서 학계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최근에는 경기도박물관의 시굴 조사를 통해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축조된 순수 신라 석축 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성벽 윗면이 붕괴되었으나 원형은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다.


아치지고개에서 시작하여 약 5km왔으니   앞으로 석성산 까지는 1.7km 남았다

 

  2012년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문화유산연구원은 용인시 의뢰로 할미산성 중 남쪽 성벽 구간에 대한 1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성벽 축조방법이

전형적인 초기 신라 시대 특징을 보이고, 다른 무엇보다 출토유물이 6세기 중반-7세기 중반 무렵 신라 시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현제는 3차 조사및 복원을 위한 공사가 진행중에 있다

할미산성에서 석성산 까지는 가는길이  2개 있는데  우리는 2번이 마성 ic로가는길을 선택한다  왜냐고?  대부분 정맥 꾼들이 이길로 가니까?

마성 IC의 진입 도로로 내려오는데 진통이 있네

꺼먹산님은 훌쩍 뛰어 내렸는데  기자님 콤파스가 워낙 짧아  두사람이 도움을 준다 이겋도 영 재미 있네

터어키군 참전기념비가 세워진 저곳으로 넘어가야한다   이곳은 다행히도 IC진입로이니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

 

 

625전쟁 참전한 16개 외국가은데 3위로 연인원 약 50,000여명의  많은 병력을 참전시키 터어키군을 위한  참전 기념비로

  전사 행불자가 1,000명이 넘고 전사상자가 3,000명이 였단다  

 

저만치 마성 IC가 보인다

참전기념비를 가로질러 석성산 방향에서  한참을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다가 도로를 넘어 계단을 타고 들머리를 찿는다

다른 산꾼들이 지나는 들머리는 아닌것 같으나 우리는 이곳으로 진행하도록 한다

저 고목을 디딤돌 삼아

용인 숲길  이정표에서  우리가 갈 석성산을 찾아  확인 한다

정상 이정표를  확인 한다 이제300m 남았다

잠시 목을 추긴다

우리가 넘어온 영동 고속도로 수원 방향

 

향린 동산 뒷 주거 단지 뒤를 통과해야 되는 정맥길을  조망해 본다   알바를 지름길로 해서 다행  ㅎㅎㅎㅎㅎㅎㅎㅎ 

용인시  처인구?

석성산에 도착한다  그래도 휴일을 맞이하여 산객들이 많이 있고  막걸리 파는 아저씨도 보이고  

쉼터도 잘 조성되어 있다

 오늘 4명 모두  석성산 정상석에서 깃발을  펴고   옆에서 쉬고 있는 아리 따운 처자에게 한컷 부탁한다   나들이님 , 실을,  꺼먹산님, 기자님  

 

석성산(471.m)

석성산(石城山)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포곡읍 마성리, 처인구 유림동 등 3개 지역에 연결되어 있는 높이 471.5m이다. 부아산, 광교산과 더불어 용인 지역의 3대 명산으로 불린다. 광교산이나 법화산, 향수산 등 이곳 산들의 조산(祖山)으로 용인의 진산(鎭山)으로도 불린다.

진산은 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그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이다. 조선 시대에는 동쪽의 금강산, 남쪽의 지리산, 서쪽의 묘향산, 북쪽의 백두산, 중심의 삼각산을 오악(五嶽)이라고 하여 주산으로 삼았다는 《동국여지승람》《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택리지》의 기록이 있다.

석성산은 한남정맥(漢南正脈)에 속해있는 산으로 칠장산(죽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의 줄기로 도덕산·국사봉(안성)·상봉·달기봉·무너미고개·함박산(函朴山:349.3m, 용인)·학고개·부아산·메주고개(覓祖峴)·석성산·할미성·인성산(仁聖山:122.4m, 용인)·형제봉·광교산(光敎山:582m)·백운산(白雲山:560m)·수리산·국사봉(國思峯:538m)·청계산(淸溪山:618m)·응봉(鷹峰:348m)·관악산·소래산(蘇來山)·성주산(聖住山)·철마산·계양산(桂陽山)·가현봉(歌弦峰)·필봉산(筆峰山)·학운산(鶴雲山)·것고개·문수산 등으로 이어주고 있다.

또한 부아산에서 법화산향수산으로 이어주는 용인시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다. 일명 '성산(城山)' 또는 '구성산(驅城山)'이라 부른다. 또한 '보개산(寶蓋山, 349.7m)이라고 혼동하여 부르고도 있다. 그래서 조선 중기에 제작된 『용인현지도읍지』의 고적조(古蹟條)에는 보개산과 석성산을 구분 지어 설명하고는 있지만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못하다.

 

 

석성산에서 원정맥길은 군부대가 있어  통화사 쪽으로 우회한다  

 

 

통화사를 지나 길따라 하산하면서 계속 내려가다가 용인 시청 쪽으로 하염없이 내려 가 버려 중간에  풍림 아파트 쪽으로 하산하여 보니

 부아산으로 가는 들머리를 또 찾지 못해 삼가역에서 42번 국도를 넘어 부아산 정상을 보고 가장 가까운 길중  걷기 좋은 코스로 선택하여

무조건 부아산 정상으로 가기로 한다  

오늘 정맥산행은 지름길 날날이 산행이다 

파란선은 원래 진행하여야 하는 코스이고 실제로 우리가 진행한 빨간선 코스   

 

저 철탑선으로 진행해야 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수덕사

포대화상이 우리의 고난의 길을 아시는지 모르 시는지 그저 웃으시기만한다

우리도 웃자  지름길 알바

나중에 보니 포대화상을 만져 봐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갈까?

 

수덕사에서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계속 30분쯤 된비알하면서 올라 간다   꽤 빡선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니 저만큼에  정상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가 보니 한남 정맥길 이정표가 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사이비 정맥 종주

하산할 하고개를 이곳 이정표에서는 학고개로 되어 있다

부아산(402.7m)

 

부아산은 한남정맥(漢南正脈)에 속해있는 산으로 칠장산 에서 학고개·부아산(負兒山:402.7m, 용인)

·메주고개(覓祖峴)·석성산 (石城山:471.5m, 용인)으로 정맥이 이어진다.

동국여지지》에 ‘현의 남쪽 22리에 있는데 봉우리 위에 작은 봉우리가 있어 마치 어린 아이를 업은 형상이라 부아산이라 불린다

(在縣南二十二里 峯上處有小峯 若人負兒狀故名)’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부아산의전설에 의하면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외아들을 키우며 사는 한 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가난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친을 잘 봉양하였다. 할아버지 역시 손주를 끔찍이 아껴 항상 집안에 화기가 돌았다. 어느 해, 남편이 관가에서 시키는 부역 때문에 여러 날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도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고, 시아버지는 아들 대신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아이를 업고 고갯마루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시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업은 며느리는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길을 헤매게 되었다. 얼마나 헤맸을까,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며느리는 혹시나 시아버지가 짐승에게 해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곳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서는 시아버지와 호랑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다투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며느리는 호랑이를 크게 꾸짖으며, “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다면 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 테니 우리 시아버님은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어린아이를 호랑이 앞에 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는 손자를 잃은 슬픔에 오열을 금하지 못했으나 며느리의 간곡한 애원으로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시아버지가 낙담하며,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을 텐데, 어째서 어린아이를 죽게 했느냐?” 하였더니 며느리는, “어린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마음 상하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였다. 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까 봐 겉으로는 슬픈 척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사람들은 '부인이 아이를 업고 헤맨 산'이라고 하여 '부아산(負兒山)'이라고 부르고, '어린아이의 할아버지를 찾던 고개'라고 하여 '멱조현(覓祖峴)'이라고 이름붙였다. 멱조현은 또 '메주고개'로도 전해지고 있다

 

이곳 부아산은  산객들이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한사람은 사진을 찍어주고

부아산 정상에서 하고개 까지는 약 30분 하산길을 따라 진행한다

 

 

다음 10차 산행을 이어갈 들머리 하고개를 당겨보고

 

 

용인 대학교 정문에서 산행을 마치고 잠시 기다리니 다행히 택시가(10.000언 지불) 있어 바로 산행 들머리로 차량을 회수하려 간다

 

총 4명 소수 정예 인원으로 한 9차 한남 정맥 산행   오늘은

땡땡이 정맥 산행이 되었다  이렇게 하면 않되는데 ㅋㅋㅋㅋ 

그렇지만 포인트할미산성, 석성산, 부아산 등 주요 포인트는 찍고 왔으니  위안은 된다

승용차로 이동 시간을 단축하고  조금은 땡땡이 하여 산행을 마치니 여유 시간이 있다

이왕 여기 까지 왔으니  가는길에   수원화성에 구경이나 가자  

참 오늘 산행 참여를 못하신 가고파님의 조속한 쾌차를 기원하면서

 

 부천으로 넘어와 얼큰한 남원 추어탕으로 뒷풀이를 하고 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