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옥천여행]육영수 여사 생가

실을1 2019. 7. 19. 08:06




옥천읍 정령산 자연 휴양림에서 1박 한 후  대전으로 가는길에 점심을 먹기위해  읍내로 가는 길에 육영수 생가에   들려본다

옥천 육씨 24대손인  나는 육영수여사와 같은 학렬이다 (내 족보에 등재된 이름은 참고적으로 육완수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옥천 육씨에 대한 공부좀 해본다


옥천 육씨(沃川陸氏)의 시조(始祖) 육보(陸普)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사람으로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 당(唐)나라 명종(明宗)이 문학전례지신(文學典禮之臣)을 뽑아 신라에 선교사(宣敎師)로 보낼 때 홍천하·정한 등과 함께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신라에 동래(東來)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간 계대(繼代)를 실전(失傳)하여 고려 충렬왕 때 주부(主簿)를 역임한 육인단(陸仁端)을 1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여 왔다.


옥천(沃川)은 충청북도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신라의 고시산군(古尸山郡)이었는데 경덕왕 때에 관성군(管城郡)으로 고쳤고, 1313년(고려 충선왕 5년)는 옥주(沃州)로 승격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는 옥천으로 개칭하고 경상도 관할에서 충청도로 변경하였다. 《세종시록지리지》에 충청도 옥천군의 토성(土姓)으로 육(陸)·황(黃)·전(全)·신(申) 4성이 기록되어 있다. 1896년 충청북도 옥천군이 되었다.


육씨 4대 종 파 

덕곡공파(德谷公派) - 육려(陸麗)

목사공파(牧使公派) - 육항(陸沆)

순찰사공파(巡察使公派) - 육비(陸埤)

낭장공파(郎將公派) - 육수(陸綬)


난 이중 덕곡공파이며  덕곡공파(德谷公派)의 육려(陸麗)는 고려 말에 도순찰사(都巡察使)로 왜적(倭賊)을 격퇴하는 데 공(功)을 세워

 크게 이름을 날렸으며, 조선이 개국(開國)하자 절개를 지켜 벼슬을 버리고 충남 공주 덕리(德里)에 은거(隱居)하였다.

그의 손자(孫子) 육명산(陸命山)은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했으며

후대에 내려가 다시 석동계(石同系)와 석정계(石貞系)로 나뉘어 조선조(朝鮮朝)에서 충의(忠義)의 전통을 이었다.


현대사에서 주요 인물로는

육홍균(陸洪均, 1900년 ~ 1983년) : 독립운동가. 제헌 국회의원.

육지수(陸芝修, 1907년 ~ 1967년) :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대한지리학회 부회장.

육영수(陸英修, 1925년 ~ 1974년) :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굉수(陸宏修, 1925년 ~ )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육완순(陸完順, 1933년 ~ ) : 무용가. 이화여대 교수.

육동한(陸東翰, 1959년 ~ ) :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제10대 강원발전연구원 원장.

육동인(陸東仁, 1962년 ~ ) :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춘추관장 등이 있다

연애인은 육중완(25세손), 육성재(26세손)이 유명하며 

2015년 기준  옥천 육씨는  22천명 정도있는 희소 성씨이다  


육영수 생가는

 옥천읍에 있으며  고 박정희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 허물어진 채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2011년 5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이 집은 1600년대 정승을 지낸 김씨가 처음 지어 살았고, 이후 송 정승, 민 정승 등 3명의 정승이 살았던 집이라 하여 ‘삼정승집’이라 불렸다.
육영수 여사가 태어나기 전인 1918년 육종관이 민 정승의 자손에게서 사들여 수리하면서 조선 후기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99칸 집이었다는 이야기처럼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건넌채, 안채, 뒤채, 행랑, 별당, 후원, 정자, 연못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으로 보이는데로 즐기시길


































생가지 앞에 연곷지가 잘 조성되어 몇장 포스팅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