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인대가 늘어 났고 무지 외반증으로 아픈 다리를 위해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하에
진짜로 이젠 한달에 한번만 산행을 하려고 작정하였다
11월 정기 산행으로 해남 두륜산을 다녀왔으니 이번달은 둘레길 포함 산행은 절대 피하려 한다
주말 막바지 단풍을 보러 정한 곳이 고궁 단풍,
그 중에서 백미라 칭하는 창덕궁 후원으로 정했다
토요일은 올 김장의 위해 소래 포구로 가서
육젓 3kg을 사고 울 작은딸이 먹어 보고 싶다는 간장 게장을 담기위해 꽃게와 대하를 샀다
일요일 나 혼자 창덕궁으로 향한다
아침 8시경에 부천역에서 출발하여 안국역에 내리니 거의 9시쯤 된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창덕궁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갔지만 벌써 즐이 200여m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창덕궁 후문 예약하는 방법은 인터넷으로 에약하기(1회 탐방 100명 중 절잠인 50명은 해당일 6일전에 10시부터 인터넷 예약이 가능하다)와
당일 선착순으로 나머지 50명은 입장이 가능하다
아무튼 번거롭고 에약되 잘 되지 않는다해서 당일에 무작정 줄을 서서 표를 사기로 한다
늦게 보는 회차의 표를 사면 먼저 정궁을 돌아보고 나서 후원으로 가면 되니까?
기다리는 남는 시간에 담벽에 있는 창덕궁궐 전체 사진도 찍어 보고
현대그릅 사옥이 옆에 있었네 ...
기다리면서 매표 현황판엔 1,3시나 가능한걸로 나와 있다 ...
특히 이날은 1회 입장객을 100명에서 200명으로 늘린 탓도 있지만
오늘 난 정말 운이 좋다
줄을 선지 40여분만에 내 차례가 돌아 왔다
판매원이 1명이냐고 묻더니 "10시표 입니다 빨기 가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횡재가 또있나 ?
아마 인터넷 예약한 사람이 않 와 표가 1장 남은 모양이다
참고로 후원 관람은 5,000원, 정궁 관람은 3,000원이다 (합하여 8,000원)
서둘러 돈화문을 넘어 뛰다 시피 하여 후문으로 향한다
후문은 돈화문에서 약 300m 정도이여서 다행이도 10시에 늦지 않고 입장할 수 있었다
고궁 해설자의 인솔 하에 무리지어 관람하는데
특별히 오늘은 해설자 인솔 없이도 자유로 관람이 가능하다해서
나는 사진 찍을 욕심으로 나홀로 자유 롭게 다니기로 하고 대열을 이탈한다
"후원에서 만나는 한권의 책"이란 이벤트를 하고 있다
이것은 4개의 정자 즉 영화당, 존덕정,취규정, 농산정에서 비치한 책을 읽어보는 행사이다
창덕궁 후원
오늘날 자연스런 산세에 따라 자연지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산세에 의지하여
인위적인 건물이 자연의 수림 속에 포근히 자리를 잡도록 한 배치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완전한 건축의 표상이다.
또한, 왕들의 휴식처로 사용되던 후원은 300년이 넘은 거목과 연못, 정자 등 조원시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건축사적으로 또 조경사적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후원은 태종 5년(1405) 창덕궁을 창건할 때 후원으로 조성하였으며, 창경궁과도 통하도록 하였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조원 시설로서 자연적인 지형에다 꽃과 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아름답고 조화 있게 건물을 배치하였다.
대부분의 정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정자와 전각들은 인조 원년(1623)이후 개수·증축된 것이다.
이곳에는 각종 희귀한 수목이 우거져 있으며, 많은 건물과 연못 등이 있어 왕과 왕비들은 이곳에서 여가를 즐기고 심신을 수양하거나 학문을 닦고 연회를 베풀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이 고도의 조화를 표출하고 있으며,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조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
골짜기에 숨어 있는 부용지, 애련지,관람지 옥류천의 4 곳의 정원들을 순서대로 돌아 보자
후원으로 가는길
후원의 첫번째 관람지인 부용지와 주합루
부용지
부용정(보물:1763호)은 휴식과 학문적 용도로 쓰인 아름다운 건물들로
이곳은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300평(약 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었다.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으로 2012년 보물 제 1763호로 지정되었다.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주합루도 2012년 보물 제 1769호로 지정되었다.
하나하나의 건물도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이다.
현재는 어수문을 중심으로 생울타리인 취병을 재현하여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부용지에 비친 주합루 어수문 영화당을 담아 본다
아침이라 그런지 바람도 없어서 그런지 연못이 잔잔 하여 반영을 담아 보는데 아래엔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생각보다 그림이 잘나오지 않는다
맨위 주합루 그 밑 어수문 우측 영화당
우리를 인도하는 해설사 인데 같이 안다녀서 그런지 이 곳을 떠나려다 처음 봄 ㅋㅋㅋㅋ
부용정 과 사정기 비각
주합루
정조 원년에 창건한 루로
아래층은 규장각(도서 수집과 연구) 위층은 누마루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다" 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겨진 문
어수문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가 치뤄 젔다는 영화당
한권의 책 행사가 이루워지는 곳
불로문(不老門)과 애련지
군자의 성품을 닮은 경치가 있는 이곳은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원래 이곳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 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불로문을 통해 애련지로 들어 간다
애련지와 애련정
숙종이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라고 하여 애련지라 친했다 한다
연경당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후원 높은 곳에 있는 농수정(濃繡亭)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연경당은 2012년 보물제 1770호로 지정되었다.
존덕정으로 넘어 간다
존덕정 일원
존덕정(尊德亭)과 폄우사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愚?),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ㄱ’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존덕정 일원
부용정 단풍보다 이곳 관람지 단풍이 훨씬 좋은 것 같다
폄우사와 존덕정
승재정
승재정과 화려한 단풍 참 곱다
폄우사
관람정
이곳 단풍이 가장 환상적인 것 같다
이곳도 단풍의 끝판왕
취규정
한권의 책 읽기 행사
4번째 정원 옥류천 일원
옥류천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루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淸?亭)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이다.
<동궐도>에는 16채의 초가가 보이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청의정만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로 남아 있다.
연경당(演慶堂)(보물:1770호)과 선향재(善香齋)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 이다
취한정
취한정
소요정
소요암
일단 후원의 중요한 곳은 다 본것 같다
샛길로 후원 정문 쪽으로 향한다
애련지로 되돌아 왔다
몇컷 찍어보고
다시 맨처음 정원인 부용지로 되돌아 왔다
점심 햇볕으로 몇 컷 사진이 아침것보다 조금 밝아진것 같다
광각렌즈로 부용지 전체 삿
오른쪽 고리는 현대식 개목걸이 같다 ㅋㅋㅋㅋ
후원 입구로 되돌아 오니 약 2시간 걸린것 같다
이 분은 12시 관람인더 영어로 하는 해설가이다
후원 관람을 마치고 이젠 정궁 쪽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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