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사진

소요산 산행기(2009.06.06.)

실을1 2009. 6. 8. 12:48

    원효대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소요산 산행기

 

  언제 : 2009.06.06. 토요일 (현충일)

  산행 코스 : 소요산역 -> 주차장 -> 일주문->자재암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삼거리

                 -> 선녀탕 입구 -> 자재암  -> 주차장 -> 소요산역  ( 약 4시간: 점심 및 하산주 포함) 

 

   한달만에 부천 집에 다니려 왔다

   마눌과 소요산을 가기로 하고 부천역에서 전철을 이용했는데 자그만치 2시간 걸린다

   도착해서 주차장에  와보니 2년전 가을 단풍 구경하려 왔던 그곳이였다 (우리 둘 노망임) 

   

♣ 소요산 (펴온글)

서화담 양봉래와 매월당이 자주 소요하였다하여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의 녹음과 폭포, 계곡,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산이다.

서울에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의 거리에 있는 소요산(587m)은 해발은 낮아도 수목과 폭포, 봉우리가 줄지어 있는 서울 근교의 명산이다 .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동에 있으며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 또는 경기의 소금강 등으로 불린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골짜기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오랜 세월의 풍화를 겪은 기암괴석이 단풍과 어우러지고 곳곳에 폭포와 암자가 있어 더욱 절경을 이루는 산이다. 가족과 함께 봄이면 붉은 점을 찍듯 피어나는 진달래와 철쭉이 좋고 가을이면 단풍과 낙엽이 유별나 산과 진달래, 철쭉,단풍을 즐길 수 있는 산으로 각광받고 있다

 

 


 

 

  오늘 산행은 마눌의 산 실력을 고려하여 자재암 하, 중, 상백운대 칼바위를 경우하는 코스로 잡고 시작하였다

 

   산행 지도  

    코스별 거리

        소요산역에 내려 간단한 생수와 김밥을 사서 배낭에 넣고 산행을 시작 한다  

 

         주차장에 와보니 전에 왔던것이 기억난다

 

      대부분 그늘이 많이 있어 여름 산행에 적합하고 또한 계곡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기 좋은 장소가 많다

      식당으로 가는 다리

 

 

    이곳은 입장료가 일인당 1000원임

 

 

    일주문을 지난다

     속새와 이별하는 다리?

 

 

     원효바위에서 한컷

     자재암 초입의 성철 스님 남기신 글귀

 

     소요산, 자재암 과 원효대사 (펴온글)

소요산에는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와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도 있고 정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도 있다.

산 중턱의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고 한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암 주변엔 아담한 물줄기의 폭포가 널려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북적댄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의상대는 소요산  정상에 있는  봉우리로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어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장관이다.

입구에서 중간의 주차장 상가를 지나   그저 평탄한 길을 따라 가다보면 '소요산 자재암'이라 쓰인 현판을 단 일주문에 들어서게 된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기암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원효폭포가 있고 그 폭포 아래 속리교라는 다리가 있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이 나타나는데, 오른쪽으로   난 계곡길을 따라 오르면 남쪽 능선 위, 소요산의 정상인 의상대(587m)로 바로 오르게 된다.

속리교를 지나   왼쪽의 난간으로 난 길을 계속 오르면   절벽을 이룬 바위가 나타난다.   

원효대사가 수도 한 곳이라는 전설이 서려 있어 원효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양쪽으로 치솟은 암벽 사이의 숲길을 오르면 곧 세심교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백운암 돌담 옆을 지나면 곧 자재암에 닿는다.

   원효대사 이야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元曉 617 -686)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 650년 및 45세, 661년)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선교활동을 펴,그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 무열왕의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고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결혼전 원효는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누가 자루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를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다는 원효의 결혼에의  관심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 새 시대의 지평을 열어보이리라는  사상사의 선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자재암 옆에는 나한전이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굴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아주 맛있는 물이 솟아나온다.(원효샘물) 이 물은 최고의 차맛을 내기로 유명하여 이곳은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담론과 산책을 유도한 우리나라 차문화의 산실이다.   

그 옆에는 높이 20여 미터의 청량폭포가 있고   청량폭포를 지나면 중백운대로 이어지는 능선길과   계곡으로 계속되는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중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암릉길이다.   중백운대에서 상백운대 (535m)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 밋밋한 길이지만 능선 남쪽은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다.  

상백운대에서 선녀탕이 있는 계곡으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고 아니면 나한대를 거쳐 정상인 의상대까지 간 후 원효폭포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또한 의상대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 계곡 쪽으로 난 하산길이 있다. 이쪽 능선에서의 하산길들은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옥류 폭포

 

 

 

    의상봉

 

     이정표 위치에서부터 하백운대 까지는 기파른 길이 있어 깨 힘든 코스이다

 

 

 

 

 

 

      나한대 , 의상대 전경

 

 

     하백운대 위치 이곳에서부터는 오르락 내리락함

 

 

     중백운대 이정표

 

 

 

      칼비위 사작 위치: 돌들이 전부 키조개모양으로 약 500 M정도 비슷한 모양이로 전개된다

 

 

 

 

 

    하산길 삼거리   마눌이 그만 하산하자하여 선녀탕 계곡 쪽으로 항했다

 

 

     나도 잠시 발을 씻어야지 

 

     하산깅에 옥류 폭포를 다시 찰영

 

 

 

 

 

      매표소를 나와 좌측길로 나가면 식당이 있는 길로 통한다   

     하산주는 파전과 함께

    요석공원의 수세비와 마눌

     연리지 :한 나무의 가지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서 나뭇결이 하나로 이어진 것.
                  부부 또는 남녀의 애정이 깊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주차장의 연리지문

 

 

     베낭속의 사탕을 먹고 있는 마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것일까?

 

     전철이 오면 또 2시간 타고 부천으로  가야한다 (너무 멀다?)

     오늘 저녁은 부천 자유시장에 들러 병어를 사서 선어 사시미해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