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강화여행] 신미양요의 격전지 광성보

실을1 2016. 12. 19. 19:18



전등사를 둘러 보고  부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광성보에  잠시 들러 본다


이곳응 4년전에  장모님과 아내와 같이 와봤던 곳이다

파란별님은 처음이라  또다시 들러본다

입장료는 1,100원이다




광성보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 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다.

1998년에는 해변쪽으로 넓은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이용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광성보는 현재 사적 제 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광성제가 11:00부터 봉행된다.

 이 광성보는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 오기에 좋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이다.


돌아보는데 약 40분 정도 소요 되는 것 같다



이곳도 강화 나들길 2코스에 속한 곳


광선 돈대 내부( 돈대는 포가 있는 곳)

.유사시는  저기 포 구멍잇는 곳으로 포를 끌고 들어가겠지


* 우 불랑기 - 불랑기는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포1문에 다섯개에서 아홉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 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 중간 소포 - 장전후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 300m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좌 홍이포 - 포구장전식 화포로서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여기서 신미 양요란?

병인양요 이후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1866년 7월 통상을 요구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운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 일을 빌미로 무력에 의한 강제통상을 계획하였고, 1871년 주청 특명전권공사 로와 아시아 함대 사령관 로저스에게 조선원정을 지시했다.

 그들은 호위함 3척과 포함 2척, 대포 85문, 병력 1,230명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향했다.
4월 23일 미국 함대가 덕진진과 광성보를 점령했고,

이 격전에서 조선은 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에 미국은 조선이 교섭에 응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군사행동을 감행하려던 미국 측은 무모함을 깨닫고 5월 16일 함대를 이끌고 청으로 돌아갔다.

 이 결과 조선의 쇄국정책 및 배외의식은 더욱 견고해졌다.


신미양요 때  어재언 장군과 59명의 순절비

신미순의총

손돌목  돈대








철쭉이 피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단다 


광성포대


손돌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

잠시 읽어 본다


이제 용두 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