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걷기

[군산여행]군산구불길6-1구간 탁류길을 걷다

실을1 2015. 8. 5. 19:37

 

 

 

 

탁류길 6-1 구간 원계획은 적색선으로 진행 하려 했으나

선유도에서 나오니 오후 3시가 넘어서  코스중 2군데는 빠르게 건너띠어 시간을 단축했다

 

출발지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

 

 

 

월요일이라 휴관하여 내부는 볼수 없다

 

 

구 군산세관 건물

 

구 근산세관 건물에서 도로를 가로 질러 간다

탁류길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진행애는 큰 문제가 없다

구 군산 청사

 

 

군산 해양청

 

 

 

 

 

 

월명공원으로 향한다

 

해망굴

 

 

 

 

 

 

 

 

군사 수시탑

 

 

바다 조각공원으로 진행하여야 하는데 길을 잘못들어 공원을 내려간게 되었다

 

새로 단장한 정자에서 잠시 군산 시내를 전망하고 아래 시내로 내려간다

 

일본식 가옥

군산에는 이런집이 많다

 

 

 

초원사진관

 

 

 

이곳도 월요일이라 내부는 휴관이라 볼 수 없다

 

 

 

잠시 벽화시도 보고

 

 

 

 

 

 

 

 

 

유명한 이성당 빵집

딸이 좋아하는 빵좀 사려 했는데 줄이 100m 는 족히 보인다 ........

 

 

 

월명동 주민 센터

고우당

실제로 숙박을 할 수 있단다

 

 

 

 

 

 

 

산돌학교 (겔러리)

 

채 만 식

 

경   력  ▲ 1914년 임피보통학교 4년 졸업

 ▲ 1922년 서울 중앙고보 졸업과 와세다대 부속 고등학원 입학

▲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학업중단하고 귀국,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

 ▲ 1925년 단편 「세길로」조선문단 추천 받음

▲ 1926년 조선일보 학예부기자로 옮김

 ▲ 1932년 개벽사 기자로 입사

 ▲ 1934년 조선일보에「인형의 집을 나와서」를 연재. 단편「레디메이드 인생」발표

 ▲ 1936년 단편「심봉사」문장지에 발표. 그러나 총독부의 검열로 전문 삭제됨

▲ 1937년 조선일보에 장편「탁류」연재 ▲ 1939년 장편「천하태평」 발표

▲ 1945년 일제의 탄압에 견디지 못해 고향인 임피로 이사

▲ 1946년 익산시 고현동으로 옮기고 중편 「민족의 죄인」「허생전」등 발표

 ▲ 1950년 6·25사변 발발 2주전에 폐환 으로 별세. 미완성 장편 「소」를 남김

 

◇ 인간과 생애

 채만식은 1902년 군산시 임피면 취산리에서 부친 채규섭(蔡奎燮)과 모친 조우섭 사이의 5남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서당에서 천자문과 동몽선습 소학 사서삼경 등을 깨우쳤으며 9세가 되어서야 임피보통학교에 입학,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1918년 서울로 유학, 중앙고보(中央高普)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 와세다 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관동대지진과 가정의 어려움으로 1년6개월만에 학업을 단념하고 1923년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취직하게 된다.

 이때 조선문단에 단편「세길로」를 발표, 문단에 데뷔한다.

 1926년에는 조선일보로, 이후 개벽사(開闢社)로 자리를 옮긴다.

 이에 앞서 그는 중앙고보 2학년인 18세때 집안의 강권으로 한살위인 함라면 은선흥(殷善興)과 결혼,

3남매를 두었으나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숙명여고 출신인 둘째부인 김씨영(金氏榮)과 재혼한다.

 34세때인 1935년 서울에서의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개성으로 가 중형 준식(俊植)의 금광업을 도우며 창작에 몰두한다.

 1938년에는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 서울로 피신했다가 1945년 봄 일제의 탄압에 못이겨 고향 임피로 돌아와 8·15 해방을 맞는다.

 이 해에 아버지와 큰아들의 상을 당하게 된다.

1949년 6월 탁류의 인세수입 37원과 몇편 소설의 원고료를 합해 익산시 주현동에 난생 처음 집을 마련한다.

 그러나 무리한 집필로 폐환이 악화돼 감당키 어려운 치료비 때문에 집을 처분하고 나머지 돈으로 마동 269번지에 반토담집 초가를 사서 이사한다.

 그해 6월 6·25사변이 발발하기 보름전인 1950년6월 11일 4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가난과 질병의 외로운 생활 소설가 홍석영(前 원광대교수)의 말처럼

 「작가 채만식의 길지 않은 생애는 가난과 질병과 싸우면서 온몸으로 문학과 대결해온 고독한 생활」이었다.

 그는 초혼의 실패로 가정생활 역시 불우했다.

 그러면서도 불패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니고 있어 중학시절 축구선수였으며 대학에서는 학교대표선수를 맡기도 했다.

 그는 꽃을 지극히 사랑한 반면 심한 결벽증이 있었다.

그의 완벽증은 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마다 신경질적일 만큼 세심한 솜씨를 보여 부호 하나라도 허술히 하지 않았으며 문장 서술에 있어서도 철저히 냉정함을 유지하였다.

그러한 직설적인 태도는 문단생활에도 그대로 드러나 교제가 깊은 문인들이 많지 않았다.

 백철(白鐵), 이무영(李無影), 최정희(崔貞熙) 정도와 친하게 지냈으며 제자 역시 최태응(崔泰應) 한사람에 그쳤다.

 그는 한때 동반작가(同伴作家)의 위치에 있었으나 문학가동맹이 좌익단체 임을 알고 곧장 관계를 끊었다.

어떤 조직이나 이데올로기에 묶이는 걸 한사코 싫어했다.

 그는 기회 있을때마다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 나름대로의 특수한 생활과 이데올로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여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끝내 거부했고

 단발령에도 맞섰다.

그러한 그도 일제말기에는 일제의 전시체제에 순응하는 글을 몇편 남겼으며 훗날 민족의 죄인이라는 글을 써서 자책하기도 했다.

 

◇ 문학세계

 채만식의 작품은 소설 87편, 희곡 28편, 산문 평론 수필 등 3백45편에 이른다.

그는 소설 뿐 아니라 희곡분야에 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무대에 올려진 희곡은 1편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그에 대해서는 풍자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유정(金裕貞) 이상(李箱) 등과 함께 풍자적 방법으로 문학사상 특별한 경지를 개척함으로써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대표할만한 장편소설로 「탁류」「태평천하」「금의 정열」을 들수 있고,

 단편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소망(小妄)」「치숙(痴淑)」 등을 꼽을 수 있다.

 주제면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세태를 사실적으로 그린 것과 지식인의 암담한 생활을 시니컬하게 표현한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자료협조 : 전북일보 『20C 전북50인』

 

 

 

 

 

 

 

일본식 절인 동국사도 한참 공사중이라 그져 멀리서만 몇 컷 찍고 돌아 선다

 

 

선양 해돋이공원 등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지름길로 패스 한다

 

 

유명한 중국식당 빈혜원

 

구 조선은행

군산진 사적비

진포공원은 멀리서

 

 

     

  탁류 (채만식)  

 

    [줄거리]

  정주사는 신구학문을 하고 군청에서 십삼 년을 일하다가 도태당한다.

그는 재산을 정리해서 군산에 이주하여 할 일 없이 열두 해를 지내다가 미두라는 투기 노름을 하면서 손해를 본다.

 정주사는 집으로 가는 길에 외상 쌀을 더달라고 한참봉의 쌀집에 들렀다가 예쁘장한 한참봉의 부인 김씨로부터 큰딸 초봉의 중매를 서겠다는 제의를 받게 된다.

 초봉은 제중당의 여점원 겸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세들어사는 승재를 좋아하지만, 약국주인 박제호와 은행원 고태수가 초봉에게 추근거린다

. 제호는 초봉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십원짜리 지폐를 주고 같이 서울로 약국을 옮겨갈 것을 제의하며

, 태수는 은행 돈을 횡령하여 곱사등 형보를 통해 미두를 한다.

 태수는 미두장 시세 하락으로 투자한 돈을 거의 잃게 되자, 남은 돈을 형보에게 줘 버리며, 그동안 정을 통해 오던 주인댁 김씨에게 초봉과의 중매를 간청하게 된다.

  김씨는 태수가 갑부이고 장사 밑천을 대줄거라는 말로 정주사에게 혼담을 꺼내며,

초봉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려던 제호의 계획은 부인인 윤희에 의해 무산되고 만다.

초봉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하고 태수의 청혼을 받아들이며,

 형보는 태수를 궁지에 몰아넣고 초봉을 빼앗으려는 음흉한 흉계를 꾸미게 된다.

 형보는 그동안 김씨와 태수가 간통해 온 사실을 김씨의 남편인 한참봉에게 폭로해 버리며,

 간통의 현장에서 붙잡힌 김씨와 태수는 한참봉의 방망이에 맞아 죽게 된다. 같은 날 밤에 형보는 태수가 나가고 초저녁에 잠에 떨어진 초봉의 방으로 들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의 일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겁탈을 하게 된다.   

남편(태수)이 죽은 사실을 알게 된 초봉은 충격을 받으며, 장례식이 끝나자 제호를 찾아가기 위해 이리역에 나갔다가 그를 만나 같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초봉은 제호와 서울에서 살림을 차리며, 그녀는 아버지가 누구(형보, 태수, 제호)인지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자 약을 먹고 유산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초봉은 딸을 낳아 이름을 송희라고 지으며, 형보가 초봉의 집에 찾아와 자신이 송희의 친아버지라고 주장하자

 제호는 일이 복잡해질 것을 염려하여 결국 양보하고 물러선다.   

형보의 술수와 협박으로 해서 초봉은 억지로 형보와 살림을 하게 되며, 부자가 된 형보의 돈으로 초봉은 친정집을 먹여살리고 동생인 계봉을 서울로 불러들인다.

 성격 이상자인 형보가 자신과 어린 딸에게 가학 행위를 계속하자 이에 견디다 못한 초봉은 형보를 죽이는 길밖에 달리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 극약을 사러간 사이에 형보가 어린 송희에게 잔인한 행위를 하며, 초봉은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라 심한 발길질로 형보를 죽이게 된다.

  형보가 죽자 초봉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어린 딸 송희를 계봉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계봉과 승재는 초봉을 설득하여 자수할 것을 권하며 초봉은 승재의 미래에 대한 약속을 믿고 마음에 얼마간의 변화가 오게 되어 자살을 포기하게 된다.

 초봉은 승재가 자신을 기다려 줄 것이라고 믿고 자수하여 징역을 살기로 결심을 한다.

 

◈ '탁류'라는 제목은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가혹한 수탈과 절대 궁핍의 시기였던 식민지 시대,  경제적 정신적 파탄과 황폐화가 이루어진 속에서 진흙탕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이 속물이고, 탁류와 같이 혼탁한 의식과 생활 행태를 보이는 인물들이다.

정주사, 고태수, 장형보, 유씨 등이 그들을 대표하는 부정적인 인물이며, 긍정적 인물은 승재와 계봉이 정도로 나타난다.

 작품의 대부분이 부정적 인물을 묘사하는데 바쳐지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이 작품의 출발은 정 주사의 몰락 과정과 몰락한 뒤의 형편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은행, 미두장, 투기, 고리 대금업과 같은 화폐 경제 시대의 도래로 펼쳐지는 삶이 현장감 넘치게 그려지고 있어서, 작품의 스케일이 크게 펼쳐진다.

이는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경제 문제의 현실을 조명하지 못한 한국 소설에 새 장을 여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군산이라는 쌀 수출 항구를 주무대로 삼아 일본과의 쌀 거래를 배경으로 깔면서,

식민지 경제의 현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생존의 문제, 경제적 몰락과 정신의 황폐화와 같은 문제로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정주사

 → 신구학문을 하고 군청에 근무하다가 해고되어 가산을 정리하여 도시로 흘러들어온 사람이다.

 미두를 하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가장이다.

 

 

 

 @ 초봉

→ 전형적인 순종형의 여인으로 역사의 혼탁한 물결 속에 빠져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자기 개인의 이해보다는 가족의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작품 말미에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려드는 형보를 살해하고 가족의 행복을 지키려는 성격적인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 남승재와 계봉

 → 현실의 열악한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물들이다. 승재는 의사 지망생으로 온건한 사회주의자임. 

 

 

@ 고태수

 → 은행원인 그는 공금을 유용하여 미두를 하다가 형보의 꾐에 빠져 망하게 되며, 하숙집 주인 김씨와 간통을 하다가 그 남편에게 들켜 맞아 죽는다

 

 @ 장형보

 → 친구인 고태수를 이용하여 그의 돈과 아내를 빼앗고 수형할인을 해서 돈을 번 부정적 인물이다.

 변태 성욕자인 그는 초봉을 불행에 빠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초봉에게 살해된다.

 

 

 

미즈카페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시간을 가지고 두루 돌아보면 좋은 역사의 추억이 될 것 같은데

그냥 수박 걷할기 식으로 다녀온 탁류길 이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