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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랑'을 늦차로 보다

실을1 2014. 8. 26. 18:12

 

 

 

 

모처럼만에 일요일

  어제 '둘레길 도라도라'와 도봉산 포대능선 산행을 마치고 나니 심심하던 차에 막네 딸과

아직 보지 못한 "명랑을 보러 영화관에 가본다

 

 

줄거리

1597년 임진왜란 6,
오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
.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누명을 쓰고 파면 당했던 이순신 장군(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건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
그리고 12척의 배 뿐
.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류승룡)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인다
.

330
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의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는 순간,
이순신 장군은 단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바다를 향해 나서는데…
!

12
척의 조선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명량대첩[鳴梁大捷]이란?
임진왜란 이후 왜군에 의한 재침인 정유재란 시기의 해전으로,

 1597(선조 30) 9 16일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단 12척으로 330척의 왜선을 무찌른 전투를 말한다.

명량대첩 이전 조선은 파면 당한 이순신 장군 대신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의 패배로 해상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누명을 벗고 복귀한 이순신 장군은 남아 있는 12척의 배로 지형적 환경과 치밀한 전술을 이용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조선의 해상권을 회복했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 전투 중 거북선 없이 출전해 커다란 승리를 거둔 전쟁이다.

명량에서 패배했다면 일제 식민지가 300여 년 앞당겨졌을 수 있다는 의견이 존재할 정도로

 명량대첩은 조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난중일기중에서

 

十五日癸卯
1597
9 15. 맑음.

招集諸將 約束曰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兵法云 必死則生 必生則死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又曰 一夫當逕 足懼千夫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今我 之謂矣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必死則生必生則死
두려움에 맞서는 자
역사를 바꿀 것이다!


-
亂中日記 중에서-

 

 

도동 역  김명곤

이순신 아들 이회 역 권율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능히 두렵게 할 수 있다”
 

“긴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천이 떨고, 한 번 휘두르는 칼에 산천이 물들도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다”

준사역  오타니 로헤이

 

 

“장수된 자가 죽지 않았으니, 어찌 누울 수가 있겠느냐”

구루지마역 유승룡

 

약 두시간 동안  8시간의 명랑대첩을 표현한 역작으로

 이순신의 리더싶이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진한 감동과 울림을 충분히 전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