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사진

경기 소금강 운악산 산행

실을1 2011. 8. 15. 22:34

 운악산 산행

언제: 2010.08.14. 일

누구랑:나홀로 산행

 

 운악산 가는길

청량리역에서 08:20 분경 청량리 환승역 1330-44 번 운악산 가는 버스에 승차함

승용차로 가면 아래 안내도나 네비로 가면 쉽게 접근 가는함

문제는 휴일날은 보통 버스로 1시간 30분 걸린다 하는데 이날은 2시간 30분 걸림 ( 교통 체증 장난이 아님 )

 산행코스 : 운악산 입구-> 매표소 ->a코스 입구->눈섭바위->고인돌바위->병풍바위전망대->미륵바위->망경대->정상->절고개->코끼리바위->현등사->

                민영환암각서->무우폭표->백년폭포->주차장

 

 

 운악산 소개

운악산(雲岳山)은 해발 935.5m로 기암과 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아름다워 소 금강이라고도 불리워져 왔다 또한 천연고찰인 현등사가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경기도 가평군 하면과 포천군 화현면의 경계에 서있는 운악산은 강씨봉과 청계산을 잇는 한북정맥 줄기에 속하는 산이다. 청평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떨어져 있는 운악산은 기암괴석이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산세와 계곡미가 잘 어우러진 산이다.

운악산은 명지산과 청계산에서 시작된 조종천을 끼고 있고 곳곳에 기암과 괴봉이 솟아있고 산세가 훌륭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찾는다. 크지는 않지만 여러개의 폭포가 줄줄이 자리잡고 있고,현등사가 산과 계곡을 적절히 이어주고 있어 산행객들의 발걸음을 더욱 잦게 만든다.

 

봉래(逢萊) 양사언의 시에 이르기를 "꽃같은 봉우리는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았고"에서 화현면과 궁예왕성의 지명이 되는 단서가 보인다. 운악산은 이름그대로 뽀죽한 기암 괴석의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서 그 모습이 마치 瑞記(서기)를 품은 한 떨기 향기로운 꽃과 같다.그래서 지명이 雲岳山이다.

유적지로는 궁예성터,궁궐터,만경대,신선대,병풍바위,미륵바위,코끼리바위,눈썹바위등이 있고 주봉 만경대를 중심으로 산세가 험하여 기암 절벽으로 산을 이루고 있어 그 경치가 절경이며,구름이 산을 감돌아 심비감 마저 느끼게 한다 .화학산,감악산,관악산,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중 하나라 " 경기 소금강"이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운악산의 가을은 아래는 단풍 위로는 억새를 볼수 있다. 단풍을 보면서 산을 오르기에 가장 좋은 코스는 가평석거리에서 시작해 현등사를 지나 절고개로 해서 정상에 오르는 코스. 산정상은 평평한 능선길. 중간중간에 아래를 굽어보며 쉴수 있는 너른 바위들이 있어 여유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가벼운 데이트삼아 운악산을 찾았다면 현등사와 현등사계곡 주변의 단풍나들이만 해도 충분하다.

현등사는 천년에 가까운 고찰로 규모는 작지만 불심은 대단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운악산의 이름이 현등산으로 불리기도 하고 몇몇지도에는 현등산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조계폭포, 무지개(무지치)폭포, 건폭 등 폭포를 품은 계곡이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도 좋지만 암봉과 진달래가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뛰어난 산이다.

 

 현등사 입구 에서 부터 산행을 시작 한다

 조금 걷다 보면 만경로 산행방면으로 길머리를 잡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첮기암인 눈썹바위가 보인다 잠시쉬어가자

 

 이제부터 경기 오악 즉 파주 감악산,가평 확악산, 개풍 송악산, 서울 관악산과 함께하는 경기 5악의 면모를 보여 준다

 

 

 

 

 고인돌 바위

 

 

 

 이곳에서부터 전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잔뜩 구름과 안개로 잘보이지 않는다

미륵 바위 멀리서본 전망이다

 

 

 

 

 

 병풍바위

 

 

 

 운악산의 랜드마크 미륵 바위

 

 

 

 

 이후 계속 암벽으로 정상이 가까워 진다

 

 

 

 

 

 

 

 잠잠하던 비가 후두둑 떨어지지 시작한다

카메라, 베낭 모두 우천대비하고  아침에 가지고온 우산을쓰고 정상에 도전 한다

드디어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전망 제로........................

 

 

 정상석 뒤 글씨를 카메라에 담아 올린다

 이후 계속되는 폭우로 산행한다

남근석전망대에 가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계속 빗속을 고고 ............................

코키리 바위

 현등사에 도착한다

현등사 소개

현등사는 천년에 가까운 고찰로 규모는 작지만 불심은 대단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운악산의 이름이 현등산으로 불리기도 하고 몇몇지도에는 현등산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조계폭포, 무지개(무지치)폭포, 건폭 등 폭포를 품은 계곡이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도 좋지만 암봉과 진달래가 조화를 이루어 경관이 뛰어난 산이다.

 

 

이 절은 그 후 몇 차례 더 소실되고 재건되기를 거듭한다. 현재의 건물 중 다 스러져 가는 산신각이나 18세기에 세웠다는 극락전을 제외하면 별반 오래된 건물은 없다. 이처럼 운악사는 그 이름에 비해 절 건물이 화려하지 않다.

6.25전쟁 때도 화를 입었으니 고색창연한 옛스러움은 느끼기 어렵다.주의를 압도하지 않는 절 건물은 오히려 자연과 어울린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평의 역사를 더욱 잘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가평읍에 있는 '한국 전쟁 참전기념비' 가 보여 주듯 현등사도 현대사의 상처를 비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자랑할 만한 역사의 흔적이란 화려함에서 오지 않음을 현등사에서 느낄 수 있다. 경내로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단으로 쌓은 돌 추대는 이것의 연원이 얼마인가를 따지기 전에 우선 편안함을 준다.오랫동안 잊고 살다 우연히 찾은 옛 물건을 대할 때의 느낌 같은 것이다. 이런 느낌을 주는 것들이 경내에는 여럿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된 석탑과 함허 대사 부도탑, 지진탑(地震塔)등이 그것이다.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탑은 원래는 5층탑 이었는데, 현재는 2층의 몸 돌과 지붕 돌이 없어져 4층으로 보다. 탑 전체의 아래쪽에 온갖 문양으로 장식된 부분이 기단부이고 이와 포개 놓은 듯한,문양 없이 외곽선만으로 감실 형태를 만든 부분부터가 탑신 곧1층 몸 돌이다. 현재의 형태 중 1층 지붕 돌 과 2층 지붕 돌 차이가 큰 것은 원래의 2층이 없어졌기 때문이라 추측해도 된다.

지붕 돌을 들여다보면 네 귀를 치켜들었는데 이는 고려 말쯤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갑것의 문양들도 조선 공예품에서 나타나는 문양들이 많다.이를 증명하듯 탑 속에서 나온 사리용기의 기록은 탑의 조성 연대가 성종 1년(1470)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석탑 아래쪽 돌축대 모서리에는 또 다른 탑이 하나 있다. 이 탑 역시 1층 몸들을 잃어버려 온전한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원래는 3층탑 이었는데 서 있는 위치부터가 여느 탑의 위치하고는 다르다. 보조국사가 이 절을 다시 일으켜 세울 때 풍수지리 설을 토대로 했듯이 이 탑은 그 이름부터가 땅 기운을 누르기 위한 지진 탑이다.

 

현등사의 기원이 신라 법흥왕 때로 그 당시에 이미 신라가 북한강 유역까지 점령했을까 되묻게 했듯이, 지진 탑에서 불교와 풍수지리의 뒤섞임을 엿보게 하는 역사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함허 대사의 부도 역시 소박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함허의 부도는 강화도 정수사에도 있는데, 여기의 함허 대사 부도는 함허와 관련된 주창 설화 때문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다. 조선 태종 11년(1411)에 함허 기화가 삼각산에서 오신산으로 가다가 이 부근에서 길을 잃었는데, 갑자기 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므로 따라가 보았더니 사슴은 간 데 없고 그곳에 옛 전각지가 있었으므로 절을 크게 중창했다는 얘기이다

 

 

 

 

 

 

신라 법흥왕 때 건조한 탑으로 높이 3.7 m 자연 석반을 지대석으로 하고,그위4각 하대석과 낮은 상태중석 다시 두터운 상대 갑석으로 기단부를 이루고 있으며 아무런 조각이 없는 4각옥신위에 1층 옥개석은 상대갑 보다 넓으나 2층부터는 옥과 옥개석의 차이가 차차 적어졌으며 각옥 개석은 귀가 들리고 곡율이 큰 것이 특징이다이 탑은 방형< 方形 >의 지대석< 地臺石 > 위에 단층기단< 單層基壇 >을 놓고 그 위에 탑신부< 塔身部 >와 상륜부< 相輪部 >를 형성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에는 종·횡선문< 縱·橫線紋 >과 연주문< 聯珠紋 >, 연화문< 蓮華紋 > 등의 조식< 彫飾 >이 있다. 탑신부에는 상하층 감축이 있어 안정감이 있으며 옥개석받침돌이 낮은 편이어서 주목된다.

 

상륜부는 화문< 花紋 >과 연주문< 聯珠紋 >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기단부와 탑신부 각부의 양식수법< 樣式手法 >으로 보아 고려< 高麗 > 말기< 末期 >에 속하는 석탑이다.

 

 

 

 

 

 

 

 

이탑은 화담 박경화(1786-1848) 의 부도탑으로 서기 1848년에 세운 것으로 이부도탑의 주인공이 화담당은 1803년에 화양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고 지탁 대사의 법을 이어 받았다. 그후 강원도 보계산 석대암에서 화엄경 .열반경 등을 연구하고 전국각지의 사찰을 순회 하며 67품의 계송을 퍼다가 만년에 이곳 현등사에 들어가 수도에 전념 하였다.

 

 

 

또한 본탑은 운악산이 음기가 서려있는 산으로 매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앙기를 보강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려한 선인들의 지혜도 되새기게됨

 

 

 

 

 

현등사 경내의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 부터 이 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기단부 및 1층 탑 신석이 없어져 원형을 잃고 있다. 가장 하단에 있는 지대석에는 2단의 괴임대가 마련되었고, 네 귀퉁이의 합각<合角>이 뚜렷 하다.

기단의 갑석<甲石>은 2매의 판석으로 아래쪽에 부연<副椽>과 위쪽에 각형 2단 받침을 조성하였고 네 위퉁이의 합각선이 뚜렷하다. 탑신석 <塔身石>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탑신석에는 각각 양 우주<隅柱>가, 옥개석의 하단에는 옥개 받침이 있고, 2층이 4단, 3층이 3단으로 상층으로 갈수록 수가 줄어드는 형식을 보인다. 낙수면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고, 추녀는 수평으로 흐르다 끝에서 급하게 반전<反轉>되었다.

 

 

 

 

각 층 옥개석의 위에는 탑신을 받기 위한 각형 1단의 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석<露盤石>(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보주 등의 상륜부재를 받치는 장식)만이 남아 있는데, 지름 5㎝의 찰주공<擦柱孔>(탑의 가장 꼭대기에 장식하는 기둥인 찰주를 세우기 위한 구멍)이 있다. 이 석탑을 지진탑이라 일컫는 것은 이 곳의 지기<地氣>를 진압하기 위해 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삼충단(三忠壇)은 조병세(趙秉世), 최익현(崔益鉉), 민영환(閔泳煥) 선생 세분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이다.서기 1905년 일제는 강제로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을 체결하였으며 드디어 국권마저 침탈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다.당시 조병세(趙秉世) 선생은 의정대신(議政大臣)으로 있다가 가평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이 조약에 서명한 오적(五賊)을 처단하고 하루속히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며 항거하였으나 왜헌(倭憲)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결고 국중사민서(訣告國中士民書)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충신이고 최익현(崔益鉉)선생은 을미의 병운동(乙未義兵運動)의 태두이었는데 소위 오조약(五條約)의 체결을 보고 통분하여 다시 의병을 봉기하여 왜구토벌에 앞장서 싸우다가 체포되어 대마도로 이송 구금되었으나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순국한 충신이다.

 

민영환(閔泳煥) 선생은 시종무관(侍從武官) 이었는데 을사조약을 보고 대한문 앞에 나가 석고대죄(席藁待罪)하며 국권회복의 상소를 올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국민과 각국공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충신이다. 이 삼충단은 일제치하이던 1910년에 설단(設壇)되었으며 1989년에복원하고 매년 11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

 

 

 

 

 

 

산사(山寺)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 본래 기둥을 일직선상에 세웠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이다. 네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이며 기둥 넷을 일직선상에 세운 특수형도 있는데 동래(東萊)범어사(梵魚寺)의 것이 여기에 속한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은 독특하게 세운 것은 일심(一心)으로 진리에 세계를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내포되어있다, 건축양식은 주로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윗부분이 가중되어 있으며 문에 현판을 걸어 사찰의 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2005년 준공)

 

 

 

 

 

 

 

절로들어가는 3문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즈막 문 " 불이"는 본래 진리는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불국토)가 전개딤을 뜻하기 때문에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2005년 준공)

 

 

 

 

 

 

 

 

부처님 교법(敎法)에는 삼배(三拜),백팔배,7일기도,백팔염주,7재,49재, 등 의식이나 수행에 있어 숫자가 많이 등용된다. 여기108계단은 108배를 하는데서 기인됐고, 108배는 108번뇌를 참회와 정진으로써 보리로 승화시키는 수행방법이다. 108계단을 한계단 한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번뇌가 소멸하고 정각을 이룬다는 싶은 뜻이 있다.

 

 

 

육근에 호악악평등의 3을 곱하여 18번뇌가 되고 ,육식에 낙수,고수,사수 등 3수를 곱하여 18번뇌가 딘후 18+18은 36번뇌가 나타난다. 이36을 과거,현재,미래등 3세에 곱하면 36*3=108 번뇌가 된다.

 

 

 

 

 

 

 

 

 

 

 

 

 

 

 

 

 

 

 

 

 

 

 

 

 

 

 

 

 

 

 

 

 암가을 찾다 보이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니 "환" 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원점 회귀하고 운악산 시작 표지를 한켓한다

렌즈에 물방울, 습기로 사진이 엉앙이다

 버스를 타고 귀경인데 너무 막힌다

거의 한시간 가량 밀리고 밀리다 펑평에서 전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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