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이 있는 음식

미식기행 목포

실을1 2014. 3. 11. 19:47

< 미식기행, 목포>

목포의 오미를 찾아서

목포의 역사가 그러하듯 남도의 개미는 파내고 또 파내도 끝이 없는 깊은 맛이다. 그야말로 개펄 같다. 오죽하면 남도의 풍류마저 밥상에서 나온다고 하겠나. '가을 전어회를 못 먹으면 한 겨우내 가슴 시리다','겨울 숭어 앉았다가 나간 자리 뻘만 훔쳐 먹어도 달다'는 남도식 식생활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목포 낙지의 힘

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둘둘 말아 석쇠에 구워내는 낙지호롱이

기절시킨 낙지를 칼로 '탕탕탕' 다져서 내오는 낙지 탕탕이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연포탕

<1박2일>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진 신안뻘낙지식당


낙지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해산물이다.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대표적인 스태미너 식품이자 날로 먹어도, 볶아 먹어도, 탕으로 끊여 먹어도 다 맛있다. 보통 발이 가늘고 작은 세발낙지를 최고로 치지만 사실 낙지는 몸집이 커도, 작아도 다 맛있다. 낙지의 식감은 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데 신안군의 옥도 개펄에서 난 뻘낙지를 최고로 친다. 목포세발낙지로 알려진 어린 낙지들은 대부분 신안군에서 잡아 온 것이다. 신안군에서는 연간 30만접(1접 20마리)을 잡는데, 지난해에는 생산량이 크게 줄어 어민들의 고민이 컸다. 목포와 부안 등지에서 이뤄지는 통발어선의 남획이 원인이기도 했단다. 목포는 항구라서 개펄이 없다.

서울에서 비싼 돈을 주고도 냉동낙지만 먹어 온 입에게 목포 낙지 식감은 생소하기까지 했다. 야들야들하면서 물컹물컹한 것이, 그동안 알던 쫄깃한 낙지가 아니었다. 낙지를 소금물에 넣어 기절시킨 뒤 칼로 탕탕탕 다져 나온다고 해서 '탕탕이'라고 불리는 산낙지는 단연 낙지요리의 하이라이트. <1박2일> 프로그램에서 본 탕탕이와 좀 다르다 했더니 계란 노른자가 빠지고 참기름과 깨소금만 듬뿍 뿌려져 나왔다. 날계란은 촬영을 위한 연출이었다는 것이 '신안뻘낙지식당' 아주머니의 설명. 씹었는가 하면 미끄러지듯 넘어가 애간장을 녹이는 그런 맛이다. 남도 음식은 참기름을 과하게 사용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산낙지에서 참기름은 맛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어쨌든 탕탕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참기름 냄새만 남았다.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석쇠에 구운 낙지호롱은 구운 티도 안 나게 매끈하고 매운 양념이지만 고소함을 놓치지 않는다. 연포탕의 시원한 국물은 해장에도 좋지만 안주로도 최고다. 그리하여 낙지는 술을 부르고, 술은 다시 낙지를 부른다.
신안뻘낙지식당 | 주소 전남 목포시 호남동 409 문의 061-243-8181

1 목포에서 민어로 가장 유명한 영란횟집 2 냉동실에서 숙성 중인 민어

●귀족의 입맛 민어

하루 정도 숙성시켜서 나오는 선어회의 대명사 민어회

특제 소스에 찍어 쌈을 싸 먹어도 좋다

뼈다짐, 민어껍질, 부레 등의 민어 부속물도 별미다

제철은 아니지만 민어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1969년부터 민어회를 팔았다는 목포 영란횟집의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제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가을 전어만큼이나 유명한 여름 민어이기에 한여름에는, 특히 복 즈음에는 줄을 서다 못해 번호표를 받았다가 되돌아와야 할 정도로 손님이 몰리는 곳이다. 게다가 예약을 받지 않는다. 인근에 몇 개의 횟집이 몰려 있어서 민어의 거리가 형성되어 있지만 영란횟집의 인기를 넘볼 수는 없다.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민어는 잡히면 금방 죽어 버리기 때문에 활어회로 먹기는 힘들고 대신 하루 이틀 숙성시킨 선어회로 먹게 된다. 영란횟집 냉장고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민어는 생각보다 크기가 큰 생선이었다. 조기의 사촌쯤 된다고 하지만 몸집에서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큰 것은 1m가 넘기도 한다고. 두 생선의 공통점은 산란기나 교미기에 개구리처럼 합창을 하며 울어댄다는 점이란다. 물고기가 운다는 것도 몰랐던 사실이다.

민어가 처음은 아니었다. 언젠가 누가 귀한 생선이라며 서울까지 공수해 와 잔치를 벌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리가 불편해서인지 그리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24시간 일정한 온도에서 숙성시켜야 하는 민어는 장거리 이동에서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본고장에서 만난 잘 숙성된 민어회는 조직이 적당히 느슨해져 마치 입 속의 혀처럼 부드러웠다. 선어회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뼈까지 부드러워지는 것인지 칼로 다져서 '민어 뼈다짐'으로 내놓기도 한다. 민어 껍질도 보들보들하니 먹을 만한데, 지역 사람들이 최고로 친다는 민어의 부위는 의외로 부레다. 질기고 기름져서 처음엔 넘기기가 부담스러웠지만 단맛이 강한 영란횟집만의 특제 소스를 곁들이니 색다른 별미가 된다. 사실 이 민어도 목포가 아니라 신안군에서 잡히는 어종이지만 지금은 목포의 대표적인 음식이 됐다. 잘 먹는 내공이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민어는 회뿐 아니라 달임으로도 즐겨 먹는데 보신탕을 능가하는 여름 복날 보양음식으로 유명하다.
영란횟집 | 주소 전남 목포시 중앙동1가 1 문의 061-243-7311 민어회/ 민어무침/ 민어전 각 4만5,000원

●흥하는 생선 홍어

목포종합수산시장은 홍어전문으로 특화되어 있다

홍어를 취급하는 식당이 흔한 목포에서도 흑산도 홍어의 가격은 만만치가 않다

홍어 안주에 조촐하게 술잔을 기울이기 좋은 덕인집

숙성시켜 부드러워지는 민어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생선이 홍어다. 이 생선은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독해진다. 하지만 홍어 중독자들에게 이 냄새는 향기롭기만 하다. 홍어 중에 최고로 치는 흑산도 홍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조차 쉽지 않지만 목포에서는 그렇게까지 귀한 몸은 아니다. 다만 비쌀 뿐.

그 몸값을 조금이라도 내려서 홍어를 구입하려면 목포종합수산시장에 가면 된다. 이름이 종합수산시장이긴 하지만 이 시장의 주종목은 홍어다. 이 집 저 집 주문이 들어온 홍어를 썰어 포장하느라 손길들이 바쁘다. 맛으로는 칠레산 홍어도 만족도가 꽤 높은데, 요즘은 아르헨티나산 홍어가 칠레를 밀어내고 인기가 오르는 추세란다. 칠레산 홍어와 흑산도 홍어의 가격 차이는 분명하다. 국산 홍어는 1kg 작은 포장이 10만원 정도인데, 칠레산은 4만원, 3kg 큰 포장의 경우에도 국내산은 30만원, 칠레산은 12만원이라니 국내산이 배 이상 비싸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홍어가 많이 나는 두 산지에서는 삭힌 홍어를 먹지 않는다는 점. 암모니아 냄새 풀풀 나는 홍어를 먹기 시작한 이들은 흑산도 옆 영산도 출신의 난민들이었다. 고려 말 조선 초, 왜구를 피해 섬을 떠나야 했던 그들이 나주에 정착한 뒤 고향의 향수를 달랬던 음식이 바로 잘 상하지 않는 생선, 홍어였다. 당시에는 지금의 목포가 나주에 속했었다고.

한 상에 수십만원씩 하는 홍어정식 상차림들도 있지만 홍어는 귀족의 음식이 아니니 소박하게 즐겨도 그만이다. 술꾼들에게 만만한 곳은 '덕인집'처럼 막걸리 기울이는 정겨운 주점이다. 홍어삼합의 수준은 홍어의 출신지뿐 아니라 묵은지와 삶은 돼지고기의 품질에서도 판가름이 난다는데 덕인집 안주인의 안목과 솜씨가 인정을 받았다. 영업 준비가 한창인 오전 시간에 잠시 들렀더니 주방에는 잘 삭힌 홍어와 아침에 사 왔다는 커다란 게가 짝을 이루고 있다. 새벽잠 설친 부지런함의 쾌거이리라.
목포종합수산시장 | 주소 전남 목포시 동명동 문의 061-245-5096
덕인집 | 주소 전남 목포시 무안동 4-5 문의 061-242-3767


●배 터지게 꽃게살 먹는 날


깨끗하게 발라 놓은 게살에 참기름과 양념장을 더한 꽃게살비빔밥은 목포 장터식당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메뉴다

●배 터지게 꽃게살 먹는 날

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장터식당'의 게살비빕밥은 목포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이미 발라져 나온 꽃게 살에 고춧가루 양념을 섞어서 밥을 비벼 먹는 것. 게살 바르기가 귀찮아서 게를 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처음 맛보는 게살의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참기름 맛이 강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밥 한 공기 뚝딱 비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주방을 흘깃거리니 김옥순 사장님이 플라스틱 통에 한가득 발라 놓은 게살을 보여 준다. 살을 발라내는 이 집만의 비결이 있다는데, 섣불리 가르쳐 줄 눈치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깨알 같은 수작업이 아니겠는가.

게살비빕밥은 목포 장터식당에서 개발한 메뉴라서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지만(너무 유명해서 게장을 제치고 목포 오미에 등극했다) 호불호가 나뉘는 메뉴이기도 하다. 게살 특유의 먹는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고, 참기름 맛이 강해서 빨리 질려 버린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 느낌이 들 것 같다면 꽃게무침을 선택하면 된다. 껍질이 부드러워 일반 게장보다 한결 먹기가 쉽다.
장터식당 | 주소 목포시 중동 1가 1-17 문의 061-244-8880 첫째·셋째 주 일요일 정기휴일

선주가 직접 운영하기에 재료가 특히 신선하다는 맛길식당의 조기 매운탕

●맛의 길 갈치의 길

수협 위판장의 상인들이 아침식사를 위해 주로 찾는다는 맛길식당. 맛길식당 사장님의 추천 메뉴는 한 토막만으로도 배가 부르다는 갈치정식이다


수협 위판장에서 새벽 경매를 마친 상인들이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주로 찾는다는 위판장 앞 '맛길식당'을 찾아갔다. 조기매운탕이 좋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고민도 하지 않았다. 칼칼한 국물에 고소한 풀치(갈치 치어), 직접 담근 송어젓 등 바닷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밑반찬들까지, 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다. 그 만족감에 파문을 일으킨 것은 맛길식당 사장님의 한 말씀이었다. "우리는 원래 갈치가 유명한데 왜 조기매운탕이 떴는지 도통 모르겠어."

맛길식당의 갈치구이정식에는 갈비살 부럽지 않게 통실한 갈치 한 토막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선주이기도 해서, 맛길식당의 생선은 위판장의 상급과 맞먹는다. "예전에는 배가 한번 나가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생선이 상하기도 했었지. 지금은 잡는 족족 가까운 항에 내려서 출하하기 때문에 엄청 신선해."

목포의 갈치를 먹갈치, 제주 갈치를 은갈치라고 부르는데, 사실 낚시를 사용하는 제주와 달리 목포에서는 그물로 잡아 갈치 비늘의 은분이 떨어져 나갔을 뿐 결국은 같은 갈치일 뿐이란다. 목포의 갈치는 원래 서민들의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그 값이 올라서 귀한 메뉴가 되어 버렸다. 가격에도 비늘이 있어서 벗겨낼 수 있다면 좋겠다.
맛길식당 | 주소 전남 목포시 해안동 1가 8 문의 061-242-5161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전라남도청 www.jeonna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