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유물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서
강진 만덕산 산행후 유물 전시관을 돌아 보았다
다산초당과 유물전시관(061-430-3223)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18년 유배생활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이다. 1999년에 개관한 전시관은 영정, 다산연보, 가계도, 학통, 다산의 일생, 다산의 업적과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 무료.
다산초당은 전시관 북쪽 700m 떨어진 곳에 있다. 다산 선생이 10년을 기거하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의 저서를 완성한 곳이다. 다산의 대표적인 저서 흠흠신서와 아언각비는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 광주 마현마을에 돌아가 집필했다고 한다. 다조, 약천, 정석, 연지석가산을 일컬어 다산사경이라 한다
다산 정약용(펴온글)
다산 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양주군 마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에게서 경서를 배우다, 16세 때부터 당시의 이름난 학자 이가환과 이승훈으로 부터 여러가지 새학문을 배웠다. 특히 그는 이익의 책을 읽으면서 실학에 전념했고, 중국을 통해 들어온 천주교 의 교리도 깊이 연구했다. 22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조임금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가지 업적을 쌓았으나 신유박해이후
장기, 강진등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는 귀양지에서 경서학의 연구에 전념하여 경세유표,목민심서등 10여권의 책을 지어내다. 그의 학문은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구해내는데에 뜻이 있었는데. 선비들과 지방관리들이 찾아오면 목민심서를 주면 백성들을 잘다스려달라고 부탁했다한다.
<목민심서>
조선후기의 문신,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고금(古今)의 여러 책에서 지방관의 사적을 가려 뽑아 치민(治民)에 대한 도리(道理)를 논술한 책이다
전라남도 강진(康津)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저술한 것으로 유배가 끝나는 해인 1818년 완성되었다. 책의 내용은 지방관이 지켜야 할 지침과 지방 관리들의 폐해를 비판한 것인데, 그의 부친이 여러 고을의 지방관을 지낼 때 임지에 따라가 견문을 넓혔고, 그 자신도 지방관 및 경기도 암행어사를 지내면서 지방행정의 문란과 부패로 인한 민생의 궁핍상을 체험한 바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저술이 가능했다고 보여 진다.
책은 모두 12편(篇)으로 나누고, 각 편은 다시 6조(條)로 나누어 모두 72조로 엮었다. 먼저 제1편의 부임(赴任), 제2편의 율기(律己), 제3편의 봉공(奉公), 제4편의 애민(愛民)은 지방관의 기본자세에 대해 논했는데, 지방관은 백성과 가장 가까운 직책이기 때문에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덕행, 신망, 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임명해야 하며, 청렴과 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부(富)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하며, 백성에 대한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국가의 정령을 두루 알리고, 민의를 상부에 잘 전달하며 백성을 사랑하는 애휼정치에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제5편의 이전(吏典), 제6편의 호전(戶典), 제7편의 예전(禮典), 제8편의 병전(兵典), 제9편의 형전(刑典), 제10편의 공전(公典)은 《경국대전》의 6전을 기준으로 지방관이 실천해야 할 정책을 논했다. 즉 이전의 경우, 아전(衙前), 군교(軍校), 문졸(門卒)의 단속을 엄중히 하고 지방관의 보좌역인 좌수와 별감의 임용을 신중히 할 것을 당부하였다. 호전은 전정, 세정, 부역을 공평하게 운영하고, 권농, 흥산에 힘쓰며, 예전에서는 예법과 교화, 흥학을 강조하였다. 병전에서는 당시 민폐가 심하였던 첨정, 수포의 법을 폐지하고 군안을 다시 정리하며 평소에 군졸을 훈련시킬 것을 논하였다. 형전은 형옥의 신중을, 공전은 산림, 천택, 영전의 합리적 운영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진황(賑荒)과 해관(解官) 2편은 빈민구제의 진황정책과 지방관이 임기가 끝나 교체되는 과정을 적은 것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백성의 입장에서 농민의 실태, 서리의 부정, 토호의 작폐, 도서민의 생활 상태 등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는데, 조선후기의 지방 실정에 대한 사회경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다산 정약용의 생애(미니어처)
태어난 곳 -> 경기도 양주군
장원급재
정조 알현
조정에서 벼슬을 받아 선정을 배품
수원성 축조
강진 유배
다산초당에서
수원성 축조시 사용한 거중기
다산 동암에서 목민심서 집필
다산의 저서
다산 정약용은 실학의 집대성 학자로 총 60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주요 서적은 다음과 같다
1. 목민심서 : 48권 16책. 1818년(순조18)에완성한 "고금의 이론을 찾아내고 간위를 열어젖혀 목민관에게 주어 백성 한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것이 나의 마음씀이다" 라고 하여 당시 국가 체계를 인정한 바탕위에 목민관을 중심
으로한 향촌통치의 운영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2. 경새유표: 44권 15책. 1817년(순조17년) 까지 10년동안 쓴 미완성 작품, 당시 행정 기구와 법제, 경제 제도 개혁 목적
3. 흠흠심서: 30권 10책. 1819년(순조20년) 형법 연구서 -> 목민심서 형전을 보충한 책
4. 기중도서: 정조 16년(1792년) 편찬 수원성 축조 시 쓴 책
5. 화성성역의궤: 10권10책. 1796년 수원성 준공(2년 8개월 공사)후 준공보고서임
'목포 그리고 영암,강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진병영성과 하멜기념관 (0) | 2009.06.29 |
---|---|
순수한 서정시의 음운이 살아 있는 영랑 생가 (0) | 2009.06.02 |
목포:잔차타고 유달산도오르고(2009.05.17.) (0) | 2009.05.18 |
신안 임자도 튜울립 축제(2009.4.18) (0) | 2009.04.21 |
영암호 잔차로 즐기기-(2) (0) | 2009.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