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운사, 마지막 가을 만나고 오는길

실을1 2008. 11. 29. 14:20

 

고창 선운사, 마지막 가을 만나고 오는 길(펴온글)
ㆍ바스락 발소리마음, 물들다

여기는 고창 선운사 도솔암 뒤 나한전이다. 단풍은 졌고, 산은 조용해졌다. 수험생 부모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여행자들이 휘적휘적 사색하며 걷기 좋은 때이다. 돌아오는 길에 도고온천도 들렀다. 거기도 한가했다.
단풍잎이 곱게 깔린 지난 14일 선운사 나한전 앞마당. 낙엽이 너무 고와 예불을 위해 불전에 드는 스님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정지윤기자

△선운사

선운사는 사색 여행지라고 할 만하다. 길이 좋아서다. 길 이야기를 하려면 절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먼 옛날 절을 세운 사람들은 참배객의 마음 가짐을 고려했다. 이를테면 산 어귀 개울가에 다리를 놓고 청심(淸心) 세심(洗心)이란 이름을 붙였다. 일단 불가의 영역에 들어오기 전 마음을 닦으란 뜻이다. 그후 일주문을 통과한 뒤 불이문에 닿게 가람을 배치했다. 불이(不二)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세속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란 뜻이다. 참배자가 부처에게 나아갈 때 단계적으로 마음을 여미란 의미를 담아 절을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변했다. 옛날처럼 먼길을 걸으며 마음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절 턱밑까지 차가 들어온다. 속(俗)의 마음을 들고 부처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반면 선운사는 다르다. 물론 선운사도 주차장에서 대웅전까지 10분이면 간다. 선운사의 가장 큰 매력은 선운사 대웅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끝은 도솔암 마애불이다. 선운사 앞에서 흙길을 밟아 40~50분 동안 걸어야 한다. 힘들지는 않다. 길은 편편하다. 바로 이 길이 선운사의 하이라이트며 사색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선운사를 둘러보자. 평지사찰인데 절이 어수선해 보이지 않는다. 강당과 대웅전, 그리고 여러 법당들이 한 마당에 펼쳐진다. 법당이 너무 조밀하게 배치돼 있거나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으면 단아암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절은 크되 헤벌어지지 않았다. 도솔암 가는 길은 볼거리가 많아서 좋은 것은 아니다. 장사송이란 솔나무 한 그루 외엔 눈에 띄는 낙락장송도 없다. 평범하고 잘디잔 나무들이 부처에게로 가는 길에 서 있다. 곁눈질 하지 않고 사색하며 걸을 수 있어 좋다. 그 길 끝에 도솔암이 있다. 도솔이란 무슨 뜻인가? 불국토다. 기독교로 치면 천국이다. 대부분의 절이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를 부처의 영역으로 삼았다면 선운사는 산 전체가 부처의 길이고 땅인 셈이다. 도솔암은 새로 지어서 운치는 없다. 도솔암 뒤에 나한전이 작지만 마음이 더 간다. 나한전 옆 바위절벽에 미륵불이 새겨져 있다. 나한전 옆 계단에 오르면 내원궁이다.

 

 지난 가을 선운산 산행시 한컷